거버넌스 생각해보기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이 답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베어 마켓에서 좋은 점 찾기
베어 마켓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굳이 좋은 점 하나를 찾자면, 사람들이 가격에 관한 이야기 대신에 다양한 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거버넌스에 대한 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거버넌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
내가 느끼기에 최근 거버넌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DAO들이 어느 정도 운영을 해보고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년 전에는 단지 개념적으로 DAO나 거버넌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운영해보거나, 여러 DAO들이 해처나가는 것을 본 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와 하고 싶은 얘기가 달라졌을 거로 생각한다.
거버넌스 생각해보기
모든 일이 그렇지만, 거버넌스만큼 사람의 취향을 타는 주제가 있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 역시 거버넌스의 정답을 찾기보다는 내가 느끼기에 거버넌스와 관련하여서 든 여러가지 생각들을 나열하는 형태에 가깝다.
직접 민주주의 vs 간접 민주주의
가장 대표적인 거버넌스의 한 종류인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는 집단의 개인이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와 개인들을 대표하는 소수의 대표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간접 민주주의이다. 이 두 가지 모델 중에 어떤 것이 더 DAO에 적합할까?
간접 민주주의에 실망한
DAO는 누가 봐도 직접 민주주의의 철학을 따른다. 토큰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 DAO의 여러 가지 제안에 대해서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안건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DAO에 열광한 이유는 기존의 간접 민주주의에 실망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Web3 바깥의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회사, 행정 기관들을 대부분 간접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때,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국가의 방향에 전혀 반영이 안 되고, 직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회사들을 본 많은 사람들은 간접 민주주의에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등장한 DAO는 사람들에게 집단 의사결정 구조의 대안으로서 자리잡기에 충분하였다.
그렇긴 한데
신기하게도 최근 내가 읽게 된 거버넌스와 관련된 글 대부분은 간접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었다. Bitcoin, Ethereum, MakerDAO, FlashBots, Lido에 참여한 Hasu의 최근 팟캐스트나 MakerDAO에 제안한 글, 그리고 a16z에서 나온 글까지 전부 DAO에서 간접 민주주의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결국 요지는 직접 민주주의로 DAO를 운영하면 한계가 명확하니깐, 간접 민주주의로 가는 게 낫다는 것이다. 현재 직접 민주주의로 인한 DAO 거버넌스의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아무도 투표를 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Snapshot에서 투표한 경험이 한 두 번 정도 밖에 없다. DAO 중에 가장 규모가 큰 MakerDAO 역시 최근 제안에 대해서 전체 주소의 0.1%만 투표에 참가하였다.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심이 없다’, ‘어렵다’, ‘귀찮다’ 등이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간접 민주주의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더 개인들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는 것인데, 오히려 사람들이 참여를 안 해버리면 장점이 퇴색된다. 이를 의사결정 피로감이라고 표현하는데, 아래 jay의 트윗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DAO들은 1부터 100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커뮤니티원들 전부의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이 때, 커뮤니티원들이 정말 복잡하고, 전문적인 제안에 대해서까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상적으로는 DAO의 구성원들이 해당 DAO에 대하여 공부도 하고, 직접 기여도 하면서 이해도가 높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 문제들로 인하여 DAO는 기존의 회사에 비하여 효율적이지 못하고, 빠르게 프로덕트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점을 간접 민주주의를 통하여 일반 커뮤니티원들에게 투표의 부담을 덜어주고, 소수의 전문가나 대표들에게 어려운 의사결정을 위임할 수 있게 하여서 해결하자는 것이 위 글들에서 글쓴이들의 의견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국가, 회사, 행정 기관들이 간접 민주주의의 형태를 채택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Web3의 역사에 비교하였을 때, 거버넌스의 역사는 인간 출현의 이전부터 존재하여 지금 2022년까지 존재할 정도로 매우 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현재 간접 민주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존경해 마다치 않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직접 민주주의를 비판하였다.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플라톤이 직접 민주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사용한 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현재 항해 중인 배 안에 항해에 조예가 있는 선주와 일반 선원들이 있다고 하자. 이때, 항해에 관하여 아무런 지식도 없는 선원들이 서로 키를 조종하겠다고 싸우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키를 잡으려 한다. 설득에 성공하여서 키를 잡게 된 선원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높은 자리를 주고, 자신과 경쟁한 집단은 배척한다. 결국에는 항해에 능통한 사람들이 배를 모는 것이 아니라, 남을 더 잘 설득하는 사람들이 키를 잡게 된다.
결국 플라톤은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하면, 국민들은 국가 통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통치자를 뽑을 수 없고, 오히려 선동과 설득, 회유에 능한 사람(demagoguery)을 뽑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방식을 통하여 가장 폭군 같은 사람이 뽑히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비유에도 문제점이 존재한다.
먼저 아쉽게도 현실세계에는 배의 선주와 같은 이상적인 통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꼭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더 나은 통치자를 뽑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선원들의 지식수준이다. 플라톤의 배에서는 선원들이 항해에 관하여 아무런 지식도 없는 것과 달리 개개인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경우도 많다.
근데 그러면 굳이 DAO를 쓸 필요가 있나?
결국, DAO를 간접 민주주의의 형태로 운영하였을 때, 직접 민주주의 비하여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커뮤니티원들에게 투표의 부담을 줄여줘서 오히려 참여도를 높이고, 거버넌스를 더 활성화시킬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근데 그러면 굳이 기존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와 DAO의 차이점이 있을까?
그렇다면 DAO의 장점은 무엇일까
나는 DAO가 직접 민주주의 모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존 집단의 의사결정 구조와 비교하였을 때 몇 가지 분명한 경쟁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투명성
간접 민주주의를 사용하여서 토큰 홀더들이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DAO의 자금(treasury)과 의사 결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누구나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사결정권자들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다. 이에 비하여 기존의 집단에서는 소수의 이해관계자들만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센티브 일치
DAO의 기여자들이 해당 DAO의 토큰으로 보상을 받게 되면, DAO의 성공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과 DAO의 성공에 대한 인센티브가 일치된다. 인센티브를 일치시키는 것만큼, 높은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없다.
빠른 실행
DAO는 몇몇 개인들이 특정 목표를 가지고 빠르게 집단을 꾸려서 행동을 취할 때 가장 적합한 집단의 형태이다. DAO 툴을 사용하면, 하루 만에 단체 자금을 만들고, 토큰을 분배하고, 의사 결정 구조까지 만들 수 있다.
참여/탈퇴의 자율성
유저 입장에서 자신이 원할 때 특정 DAO에 참여, 탈퇴하는 것이 가능하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한번에 여러 개의 DAO에 기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비하여,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이러한 자율성을 누릴 수 없다.
DAO의 목적
그래서 결국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 중에 어떤 것이 DAO에 더 적합한 모델인걸까? 두 모델이 뚜렷한 장단점을 가지는 만큼, 나는 DAO의 목적에 따라서 사용해야 하는 거버넌스의 모델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목적에 따라 다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간접 민주주의가 더 적합한 경우
만약 MakerDAO나 Lido DAO와 같은 경우, DAO의 최우선적인 과제가 좋은 프로덕트를 통하여 수익을 내는 것이다. 이 경우, 직접 민주주의를 선택하기 보다는 간접 민주주의 모델을 통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대표들로 의사결정을 더 빠르게 전문성있게 진행하여야 한다. 이때, 일반 토큰 홀더들은 여전히 거시적인 거버넌스에는 참여하되, 그 수와 복잡성을 낮춰서 부담을 줄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Hasu는 MakerDAO에 헌법(constitution)과 의회(council)을 만들자는 거버넌스 모델의 변화 제안을 하였는데, 한번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제안만 봐도 댓글에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갈리는데, 이것만 봐도 얼만큼 거버넌스가 취향을 타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Simple MakerDAO - Governance from first principles
직접 민주주의가 더 적합한 경우
하지만, FwB와 같이 커뮤니티의 성격이 짙은 DAO의 경우, 빠른 의사결정보다는 최대한 커뮤니티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하되 커뮤니티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여서, 소수의 고래들에 의하여 DAO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펙트럼
위에서는 내가 이분법적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적합한 예시와 간접 민주주의가 적합한 예시를 나눴지만, 사실 두 모델은 하나의 스펙트럼의 양 극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다. 간접 민주주의를 사용하더라도, 개개인의 토큰 홀더들에게 많은 거버넌스 파워를 줄 수도 있고, 직접 민주주의를 사용하더라도, 전문적인 분야만 처리하는 대표를 선출하여서 위임할 수 있다.
나머지 생각
누가, 뭐를, 어떻게?
이 글에서 제안된 프레임워크처럼 거버넌스 모델은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정해야 한다.
- 누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가?
- 거버넌스를 통해서 뭘 결정할 것인가?
- 거버넌스에 참여한 이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각자의 DAO의 목적에 맞게 위 질문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초스타트업
내가 느끼기에 DAO는 몸집이 작을 때, 진정한 장점이 나오는 것 같다. 아까 빠른 실행을 DAO의 장점으로 뽑기도 하였는데, ConstitutionDAO처럼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빠르게 모였다가, 끝나면 또 빠르게 해체하는 형태는 DAO로만 할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DAO의 덩치가 커지게 되면, 기존의 회사들과 비교를 해야 되는데, 아무래도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friction이 더 발생해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거버넌스 실험실
결국 더 좋은 거버넌스 모델을 찾기 위해서는 실제로 여러 DAO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거버넌스 모델을 사용해보고, 그에 따른 장단점을 느끼고, 피드백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론적으로 어떠한 거버넌스 모델이 좋다고 해도, 실제로 사용해봤을 때 또 어떠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DAO의 장점인 빠른 실행을 살려서 계속 시도를 해보는 방법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Web3를 거버넌스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Web3 바깥보다 Web3의 시간은 훨씬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여러 DAO들이 생기고 없어짐에 따라서, 유의미한 데이터가 쌓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선 생태계 측면에서 DAO의 생성과 운영을 도와주는 서비스 DAO, DAO 인큐베이터, 그리고 DAO 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여기서 다루지 못한 거버넌스 주제들
1 token 1 vote 시스템의 대안
하나의 토큰 당 하나의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한 문제점은 고래들에게 너무 큰 영향력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토큰이 아닌 다른 기여도나 평판에 따른 투표권을 주자는 의견도 있다. 이를 위해선 On-chain Reputation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Quadratic Voting이 있는데, 이를 위해선 먼저 Sybil Attack을 예방할 수 있는 Proof of Humanity나 SBT와 같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규제 이슈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규제 이슈의 경우, 토큰을 증권으로 평가받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DAO의 토큰을 최대한 탈중앙화시켰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이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규제적, 법적인 부분에 대한 불명확성은 분명히 DAO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리스크이다.
에어드랍
에어드랍은 토큰을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를 할 때, 이 토큰을 분배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cpt n3mo의 이글에서 볼 수 있듯이, 에어드랍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안 좋다. 그렇기에 어떻게 토큰을 분배하는 것이 유저와 DAO 모두에게 좋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 Issue #72: A Stupid Simple Governance Framework
- Simple MakerDAO — Governance from first principles
- Lightspeed Democracy: What web3 organizations can learn from the history of governance
- [거버넌스에 대한 오래된 생각 #6] : 의사결정 피로감(Decision Fatigue)
- [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04) 플라톤은 왜 민주주의를 경멸했는가?
- Progressive Decentralization: A Playbook for Building Crypto Applications
- We need to rethink Airdrops next cycle…